대형마트 주차비가 아까워 거짓말 한 것은 아니었다. 몇 천원 더 낼 수 있는데, 번거로운게 싫어서 그냥 밥 영수증을 친구가 가져갔다고 어물쩍 넘기고 통과했다. 그리고 갑자기 드는 생각. 저 뒷자리에 상준이가 앉아있었다면 아뿔싸, 엄마가 거짓말 하는 모습을 봤겠구나.

회개했다.
아이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준엄함을 깨우쳐 주기도 하는 존재이다. 사소한 거짓말과 나쁜 말버릇을 떠나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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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위풍당당 행진곡에 상준이랑 손을 잡고 매트 위를 빙빙 돌며 과장된 발걸음으로 행진했다. 좋다고 깔깔 웃으며 발을 쿵쾅이는 아들을 보며 '천국이로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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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희한한 소리로 종알 거린다. 혼자 놀 때도 뭐라뭐라고 하는지. 예쁜 목소리가 꼭 새소리 같다. 길에서 자동차를 보면 초음파 목소리로 꺄아아오 소리를 지른다. 싸이즈가 클수록 더 크게. 도시 아이라 맨날 보는게 자동차라 그런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래도 매일 숲 가까운 곳으로 가서 흙놀이하고 맑은 공기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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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과 밥을 분리하여 식판에 주기 시작했다. 소금기 있는 국이 턱과 볼에 닿으면 벌겋게 되어서 건더기만 건져주는데, 바닥에 있는 국물을 싹싹 긁어먹고 싶어한다. 엄마 닮아 국물쟁이로구나. 불과 몇 주 전에도 계란 흰자 먹으면 퉁퉁 붓도록 알레르기 반응이 왔는데, 어제는 조금 긁적거리는 정도였고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감자채볶음, 호박나물, 무나물, 미나리무침, 콩나물, 미역국, 날김, 씻은 묵은지, 계란찜 뭐든 잘 먹어서 메뉴 개발할 재미가 난다. 아기 밥을 먹이고 내 밥을 먹는데, 자기 밥 다 먹고도 내 밥 먹는 모습을 재밌는 영화 보듯 지켜보며 이 반찬 먹으라, 저 반찬 먹으라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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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진료가 정말 필요한 걸까? 충분한 설명도 없이 권력자처럼 지시내리는 의사들을 보는 게 싫다. 그리고 뭔 종류의 검사가 그리 많은지. 지난번엔 없던 태아 인격장애 가능성 검사가 추가됐는데, 이런건 도대체 왜 하는건가? 설명없이 걍 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의사가 싫어서 의사를 바꿨다. 첫째 때는 궁금해서 하루라도 자주 가고 싶었더랬다. 근데 이런 저런 검사결과가 혹시라도 '이상'으로 나온데도 아기를 지우거나 할 생각이 없는 사람조차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아야 하는건지는 모르겠다. 이런 얘기 하면 별 이상한 인간 다보겠네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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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딸을 낳으면 좋겠다는 주변인들의 말에 '으응' 대답하긴 하지만 사실 반반이다. 상준이같은 아들 녀석이 하나 더 있었으면 하기도 하고, 딸을 키우는 내 모습이 상상이 잘 안가기도 한다. 예쁜 옷을 입혀주거나 어여쁘게 머리를 땋아주거나 할 자신이 없다. 내가 그렇게 안 컸기도 하고. 엄마한텐 딸이라지만 엄마랑 팔짱끼고 쇼핑하는 재미도 난 모르겠고, 남동생보다 엄마랑 특별한 유대감을 나누는지도 잘 모르겠다. 윗세대 여자분들은 상당수가 나쁜 남자와 살고 있으며 좋은 남편이라 하더라도 무심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존재가 더 필요한지 몰라도. 나는 남편이랑 감정적 교감도 충분히 나누고 있기에 딱히 배우자 외에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나중엔 달라지려나? 여튼 딸을 낳는다면 가수 씨엘이나 우주인 이소연같은 여장부 스탈도 괜찮다고 생각해봤다. 물론 핑크 공주 스탈의 상 여자라면... 내가 맞춰줘야지 당근!  

첫사랑이었던 이. 동네친구들과 SNS를 통해 간간히 소식을 듣게 된다. 내 참, 어쩜 저리도 지루한 사람을 좋아하고 떨려했을까. 친구들과 우정도 져버려가며 암투를 벌렸던가. 차라리 소식을 몰랐으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을. 물론 그에게도 지금의 내가 끔찍할 수도 있겠다. ㅎ

그 땐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참 덧없다. 반면 하찮게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보니 중요한게 많고. 왜 그리 고집이 셌을까. 뭘 근거로 그리 강한 신념을 가졌을까. 청소년기는 참 많은 이야기거리와 부끄러운 치기, 오만함이 극에 달하는 때라 이야기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그래도 마냥 아름다웠던 그때라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한국에서 십대를 보내는 건 여하튼 우울했던 것 같다. 아님 글로벌리 우울한건가? 경쟁이 숨쉬는 공기와 같은 요즘 애들은 더 가엾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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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곧 트이려는걸까, 혼자서 어쩌고 저쩌고 한다. 언뜻 들으면 꼭 말하는 것 같다. 오전엔 놀이터에서 같은 개월수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데, 전엔 잘 몰라서 갖고 놀던 것을 스윽 빼앗기더니 이젠 서로 갖겠다고 싸운다.
수면시 공갈 젖꼭지는 완전히 떼었고, 애 아빠가 누워도 될만한 사이즈의 넓은 자동차 모양의 어린이 침대를 사주었더니 밤에 한번도 안깨고 잔다. 덩치 큰 녀석을 영아침대에서 재워서 몸 뒤집다가 쿵 부딪혀 에엥 울던 터였다. 엄마가 너무 늦게 조치해서 미안해. 자는 걸 싫어하더니 이젠 자기가 먼저가서 드러누워 뒹굴뒹굴 한다.

탱고는 13주, 찌르르 하니 뱃속에서 무럭무럭 크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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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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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깨어 화장실을 다녀온 후 굳이 침실등을 켜서 아가를 본다. 내게 미켈란젤로의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비드보다 더 아름다운 이 모습을 조각해 놓을텐데. 그럴 수 없어 그냥 눈과 마음 속에 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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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다 그런 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하곤 대화가 힘들다. 특히'너도 여자니까 알꺼야'라는 말에는 '난 모르겠는데?' 싶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님. 비단 나만 남성적 성향이 강해서는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친구가 페북에 남긴 글에 진짜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랑받기보다 존중받고 싶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압박이 더 아프다.

SNS를 통해 짧은 글들을 많이 보게 된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 드러나는 것은 글쓴이의 독서량이다. 툭툭 내던지는 글이 정말 재밌어서 막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해같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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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키우다보니 밥 먹일때나 집안일 할땐 팟캐스트로 세바시나 TED같은 강의를 듣는다. 기억에 남는 강의를 하는 강사의 특징.

1. 인생 스토리가 보통 사람보다 많이 특별한 강사 - 둘 다 재밌지만 김상옥 교수가 김미경씨보다 오래남는 것 이유. 뭐 잘생겨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ㅎㅎ   

2. 뭔가에 꽃힌 오타쿠 성향의 강사 - 최근 본 서울대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소아 정신과 얘긴 하나도 안하고 객관적인 것 같지도 않는 베토벤에 대한 자기의 썰을 잔뜩 풀었는데, 요상하게 기억에 콕 박힌다. 심지어는 세바시에서는 드물게 웃음코드도 없었는데 ㅎㅎ 주제는 '책을 읽자'였다. 응, 책 읽을라고 ㅎㅎ  버지니아텍에서 로보트 만드는 데니스 홍도 재밌었다.

반면 정말 기억에 안남고 듣고 나면 내 15분이 아까웠단 생각이 드는 사람들의 강의는 주로 방송연예인들의 강의다. 직업 특성상 겉포장에 신경을 많이 써서인가 내실이 없다. 전직 아나운서 출신들, 탤런트 뭐시기씨의 강의는 듣다가 대실망하여 꺼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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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진다. 열매를 맺어야지.

오늘은 레알 봄이었다. 유모차 밀고 놀이터로 향하는 길,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데, 그리움이 사무쳤던 것처럼 눈물이 났다.

상준이에게 봄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존재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 그 언젠가 '오늘은 엄마표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같은 생각만 해준대도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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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들은 한참 귀엽다. 내가 어떤 행동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행동을 반복한다. 혼난 다음에는 아까 그 좋아한다던 행동을 해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상준, 부르면 '녜' 대답하는데, 세상에서 젤 예쁜 소리다. 기분이 좋을 때는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다 인사를 해서 엄마를 우쭐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파트 단지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애들을 보면 한참을 멈춰서서 바라보거나 다가간다.

별을 그려주거나 반짝 반짝 작은별 노래를 불러주면 손으로 반짝반짝 율동을 한다. 산토끼를 부르면 손으로 토끼귀를 만들어 까딱거리는데, 요즘은 모든 동물들의 귀가 솟아오른 모양을 보기만 하면(당나귀나 귀가 선 강아지) 다 토끼귀 손을 한다. 손발가락 숫자 세기를 해줬더니 목욕 할 때마다 손가락 발가락을 들며 '이이' 하네. 그 손발을 씻길 때 하나님의 섭리가 가장 쿠쿵 와닿는다.

가벼운 입덧만으로도 몸이 천근 같고 우울해지다가도 녀석을 보면서 힘을 낸다.

 

 

형들 쫓아다니다가 흙바닥을 구르고 얼결에 경사 좀 있는 미끄럼까지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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