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페북 담벼락에 '아내가 파리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누군가 파리행 티켓을 보내주셨다. 하나님 감사 - 류의 글을 올렸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와 무려 파리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걸 입 밖으로 껄낼 수 있는 여유가 있구나.' 파리행 티켓보다, 그 여유와 배포(?)가 부러웠다. 


나의 발목을 붙잡는 건 뭘까. 잘 붙잡힌 걸까, 아님 떨쳐내야 하는 것일까. 눈치를 보는 건 적절한 일인 걸까, 아님 무시해도 되는 일인걸까.

불혹은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 불혹이라는데, 왜 아직도 잘 모르겠는걸까.  잠깐 생각하다가,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일상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의문 속, 흐물거리는 미지의 것들은 시간 속에서 점차 굳어져서 나름의 형태를 갖추겠지. 

대딩 애기 사촌동생의 인스타에 어떤 놈이 '살이쪘...?' 이딴 댓글을 달아서 혼자 부글부글. 친한 사이라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말이고 그 둘 만의 서사조차 모르는 나는 왜 이토록 홀로 열을 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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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1학년 때 잠깐 알았던 P, 4학년 졸업할 때까지 나와 길에서 마주치면 손으로 큰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 얼굴의 둥글 넓적함을 표현하며 "부추전!"을 큰 소리로 떠들었다. 

화도 못내고 웃으며 넘기다가, 언제인가 부터는 안면몰수하고 아예 모른 척을 했는데, 이 시키가 또 그러는 거. (생각해보면 P도 사이즈에 있어 뒤지지 않았다)

더 어이가 없는 건, 4학년 때 지금의 남편과 P가 같이 인턴십을 할 당시, 남편이 나와 사귀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의 말이 "이화 마음 여린 애야. 잘 보살펴줘야해."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최근에야 듣고 폭소했다. 그걸 알아서 그랬니. 너 악마니. 

지금에야 웃어 넘기지만, 그 땐 그 유치한 놀림에 얼마나 상처 받았던지. 분해서 이불 팡팡 찰 정도로 화가 나는 동시에 마음은 쪼그라 들었다. 누가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라도 하면 황급히 고개를 숙이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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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대한 평가는 끊이지 않지만, 이걸 공공연하게 드러내고서도 떳떳한 시대는 가고 있다.  칭찬이라도 외모에 대한 것이라면 자제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한 사람에 대해 외모 아닌 다른 것을 발견하고 이야기 나눈다는게 더 기분좋고, 더 덕스러운게 아닐까. 

이제는 꺼내놓을 수 있는 '부추전'의 기억. 'P가 왜 그랬을까' 비로소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냥 친근함의 표시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다 이해되어 용서가 되는 거냐면, 그렇지는 않다. 지구 어느 구석에서 여전히 어둠을 뿌리며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들고 다니지 않길 비는 것이 나의 최대 관용이다. 

"셋째 가지셨어요?"란 말에 충격 받아 홈트레이닝을 시작한지 4년 정도 지났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5회 이상 레그 레이즈(20회로 시작해서 현재 1킬로 모래주머니 양 발에 달고 120회)와 스쿼트(20회로 시작해서 현재 120회)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는 게 부담스런 나로서는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 켜고 운동하는게 최고다. 

운동을 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몸이 마음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우울증 까진 아니지만, 늘 비관적인 생각과 우울한 기분을 달고 살았는데 그 빈도수가 줄어들었다는 것. 좀 더 직접적으로는 우울할 때 스쿼트, 레그 레이즈를 하면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약해지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것. 심지어 용기와 의욕이 솟구친다..? 


홀로 그렇게 4년 하고 나니 귀차니즘은 극복되었다. 운동을 안하면 마치 밥 한끼 안먹은 것처럼 헛헛하달까. 11자 복근과 튼튼해진 허벅지는 덤이다.  

몸은 마음으로 흐른다. 그래서 먹는 것과 가는 장소, 하루의 일과를 세심히 살핀다. 유리멘탈이니까. 나이 먹을 수록 더더욱.

6월 콘서트에 음악감독 이름을 올린다기에 '아휴 그냥 저는 빼주세요' 하려다가 맘 고쳐먹었다. 우먼카인드  창간호에 카피라이터 김하나가 쓴  "우리에겐 겸손할 권리가 없다"가 퍼뜩 떠올랐기 때문. 

어느 한 작가에 꽂혀 그녀의 저서를 다 읽어버린 적이 있었다. 공감의 폭이 남다른 걸 느끼고 다른 여자 작가의 책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을 찾았다. 그날 따라 그랬던 걸까. 벽면을 가득채운 책장엔 남자 작가들만 가득하고 여자 작가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 5% 정도면 많이 쳐준걸까. 그런데 그 손에 꼽히는 이름들이 얼마나 빛나 보이던지. 이 책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그 날 이후로 여자 작가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꿀잼은 물론, 근육질로 마음을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부끄럽고 겸연 쩍어도 우리를 보면서 가능성을 키워갈 또 다른 소녀들을 우리 등 뒤에 느끼자. 우리에겐 아직, 겸손할 권리가 없다." by 김하나 카피라이터, 우먼카인드 창간호. 87P.  


불쾌해서 쉽사리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작은 사건을 통해 깨닫는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를. 개미 한마리 밟을까봐 부드러운 솔로 딛을 곳을 쓸고 다니는, 한 때 비웃었던 승려들만큼이나 만물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화려한 명목으로 치장한 모든 것의 내밀한 곳에 개인의 욕망이라는 것이 화장 떡칠을 하고 앉아 있다는 것을. 원망의 화살은 결국 삶의 어느 시점, 어떤 영역의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에서 온다는 것을.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결국엔 내 의지보다는 늘 갈고 닦은 맑은 기운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욕망이 적을수록 붙잡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는 것을. 짧은 생, 내 욕망에만 충실하다가 배터리 50%가 남은 채 그 분 앞으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을. 


학교에서 꼭 한 번은 눈물 짓는 너.

어린이집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까지 같이 올라간 학교에서도 낯설어 마음 시려 우는 너는 나를 닮았다. 

울어도 돼. 울다 보면 괜찮아져. 

울었단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터져 버릴 것 같지만, 어느덧 쑤욱 자라 돌아보며 웃을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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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조금 나은 얼굴로 등교했다. 

지난 밤 여혐러가 흩뿌린 어둠이 싸악 가시고 광명이 찾아왔다. 누가 나의 하루에 어두움을 드리울 수 있는가. 이런 승리의 광명앞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끝없이 기도하는 일인가보다. 


미얀마 유혈사태를 보며 착잡하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설명 들은 바로는 여기에 역사적으로 아주 복잡다단한 이슈가 얽혀있는데, 그 중 눈에 띠는 건 과거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해 그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는 오늘날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들에 끝없는 빈곤과 절망적인 사회상황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반면 선진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과거 침략국들은 비교도 할 수 없는 부를 누리고 있다. 그들 나라의 소위 중간계층, 아니 빈곤층이라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들을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 때가 많은데, 피해국가들의 사람들은 오죽할까. 

악한 힘은 선한 힘보다 더 부지런하고  빠른 경우가 많다. 특히 거기 욕망이 얹혀지면 폭주기관차 내지는 불도저가 되어 겉잡을 수가 없게 된다. '좀 더 부강하게'라는 목표 아래, 타인의 삶과 미래를 파괴하는 행위를 언제까지 봐야할까. 과거의 악의 뿌리 내려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이 현장, 그리고 지금 바로 이 때도 오로지 자기의 배만 불리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너무나 화가 난다. 

욕망이 얽힌 악이 마구 팽창하는 때 우리는 어떤 씨를 심어야 할까.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나를 다잡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욕망이라는 함정에 빠져 이웃과 세상을 짓밟는 행동을 정당화 하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겠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한다고, 약자의 편에 서야겠지. 생명을 귀히 여기고 평화의 도구로 사는 삶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오늘도 핍박 또는 무시를 받으며 그 길을 걷는 눈물의 선지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남편이 하루 사이 조그만 새끼 바퀴 두 마리를 보았다. 

미뤄두었던 가스레인지 닦기를 시작. 락스 뿌리고 닦고.. 하다보니 저 쪽 그릇장에 예전 흘린 국물이 보여서 거기도 닦고. 스텐레스까지 더러워 보여 베이킹소다와 식초 끓인 물에 담구고....이러고 나면 상쾌한 기분이 들어야 정상 아니냐. 뭔가 기운이 주욱 빠지고 착취 당한 기분은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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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에 놀러갔다가 MBTI 자료를 모으는 친구가 권하여 해보았는데, 수년 전, 몽상가적 INFP 기질은 돌보미형 I SFJ 바뀌어 있었다.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엄마가 되어서겠지. 

엄마와 함께 사는 친구는 아직도 수채구멍에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난들 하고 싶어 했을까. 엄마니까 그냥 하는거지. 

오늘의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바퀴벌레도 잡고, 집안의 묵은 때를 벗겨낸 후 진이 빠져버리는 이런 나를 더 예뻐해주고 싶구나. 오늘을 살아내는 니가 장하다고, 자주 토닥토닥 해줘야지.   

​명동 나간 김에 품절대란이라는  말에 넋 나가 신상 립 구매. 바르고 아들들 앞에 서니, 정말 당황한 표정으로 "누구세요?" "엄마에요?" 점 하나 찍고 전남편에게 복수 했던 <아내의 유혹>이 영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닌겐가!! ...그러나 바르고 갈 곳 없어 집에서 해금 연습시 바름


그 정도였냐



왜 

클리닉 등등을 권하지 않고, 

억지스런 수다를 짜내지 않으며,

머리 관리 여부로 혼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구리고 유행에 쳐져도 찰떡 같이 알아주는 미용사는 없는지,

그리고 어쩌다 발견하면 다음 번에 갔을 때 없어지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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