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편지를 읽고 있다. 어릴 적 위인전집에서 읽은 고흐는 '우울증 걸려 가족한테 민폐끼치고 결국 자해하는 상또라이' 느낌이었는데, 그의 글을 읽으니 그게 아니네. 하염없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직장을 잃어도 여행을 하는 등 여유가 있었다. 수십장의 편지를 느긋하게 써 내려가기도 했다. 잠시 전도사로 있었던 교회에서의 설교문은 요즘 설교자들에게선 찾기 힘든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과 묵상이 담겨있다.
산책, 편지쓰기 할 여유는 없으나 짬만 나면 스마트폰을 종일 들여다보는, 매일 세상이 무너져 내릴 듯 걱정하는 오늘의 우리는 적어도 고흐한테 미친 놈이라고 말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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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우리를 미친놈 만든다. 신과 우리를 멀게 만들려는 사탄의 전략은 교묘하다.
되도록 우리를 자연과 격리시키고, 시간과 돈에 대해 조바심을 갖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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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난 절대 엄마처럼 되고 싶지도않고, 될 수 없을거야.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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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시간, 감정 낭비다. 삶의 멋이란 바지런히 찾아야 비로소 발견하는 것. 일단 찾으면 간소하면서도 정성스레 유지되어야 하는 것. 돈으로 되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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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놓고 싶은 순간들이 많은데, 그냥 지나쳐버리는게 아쉽다.
742일, 두돌을 넘긴지 며칠 된 상준이는 대화가 통하면서 떼쓰는 게 많이 줄었다. 밥먹다가 장난을 쳐서 식판을 빼앗기니, 울어버리거나 다른 장난을 치던 이전과 달리 "이제 안할 거에요" 한다. 내키면 변기에 똥을 싸기도 한다.
61일된 상경이는 밤잠을 더 수월하게 자고 방구만 뀌어도 울어제끼던 며칠 전과는 달리 울음도 줄고 묵직해졌다.
상준이 아기 때는 울음소리를 못견뎌하던 나도 이젠 괜찮다. 애가 울어도 잠이 솔솔 올 정도(이건 좀 지나치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혈질 분노대폭발은 여전히 기도제목이다.
애들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걸 보며 감사하면서도 한편 서글프다. 요 예쁜 녀석들에게도 삶의 무게와 아픔이 닥쳐올거란 생각에 맘이 무겁다. 낙관론자의 가면을 쓴 우울한 엄마는 우울의 늪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다. 아들들이 자라서 어느 시린 날, 마음을 다잡아 힘내서 앞으로 나가는 남자로 자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읏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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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준이를 낳아 키우며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상경이가 찾아왔다.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단언컨대,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은 아이였다.

또 한 번의 출산이 임박했다.

온 몸과 마음으로 고통과 즐거움을 껴안을 것이다.  준비가 된 것 같다.

어떤 일에 있어서는 평정심 유지가 힘들다. 늘 걸림이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성경말씀에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했다. 심약한 사람이 아니라 악인. 걱정에 휩싸이고 평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믿음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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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즈음 걸린 감기가 아직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는다. 힘은 안세도 면역력+체력 최강이라 감기 따윈 남들의 반정도만 앓곤 했는데 임신 중이라 뭔가 내분비가  달라진 모양. 엄밀히 말하면 감기기운은 딱히 안남아 있는데, 걸쭉한 코가 막혀있는 상태다. 다른 때는 모르겠는데, 잠자다 깨었을 때 특히 고역스럽다. 숨 쉬기 힘든데다 뱃 속 아이 때문에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있는 힘껏 코를 풀어내면 아주 잠시 시원하다가 이윽고 다시 먹먹. 길게도 가니 답답하고, '요 전엔 어떻게 이 상태에서 벗어났지? 마지막 코가 뚫리는 순간은 어떤 식이었더라?' 궁금해졌다.

이런 류의 감기를 앓은 건 사실 30여년 동안 빈번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기억이 안나다니. 한 밤에 깨어 두 시간 뒤척이며 잠 못들 때는 '하나님 나 좀 재워주십사' 하다가 어느날 스리슬쩍 코가 뚫려버리면 마치 아무일 없었던 듯, 이게 원래인 양 기세등등 살아가는구나. 하나님이 인생에게 고난을 주실 땐 이런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는 걸까 싶다.

...근데 글 쓰는 이 와중에 코가 뚫려있네 -_- 뭐지, 어떻게 된거지.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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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식 먹일 땐 조기를 끓여 생선살을 잘게 부순 어죽도 곧잘 먹였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생선국물만 먹어도 기침과 구토를 하고 목을 긁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게 된다. 유제품은 생선처럼 심하진 않지만  붉게 올라온다. 유제품은 몸에 별로 안좋다, 대체할 수 있다 해서 상관없는데 그 좋아하는 생선의 맛을 보여줄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애 보는 앞에선 우리도 안먹는다.

이것 또한 지나갈까. 뱃속 탱고도 같으려나. 엄마는 기도한다.  

공동육아터에서 집까지 오는 길, 유모차를 안타겠단다. 임산부 느린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렸던 길을 매일 한 시간 정도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온다. 걸어와서는 밥도 잘 먹고 잠도 30분 정도 빨리 곯아떨어져서 좋다. 물론, 지나가는 강아지 고양이 다 아는 척하고, 딱지치기 하는 형들을 쭈그리고 관찰하고, 포크레인이나 경찰차가 지나갈라치면 없어질 때까지 보는 것을 기다려줘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이렇게 아들과 손잡고 긴 시간 산책할 수 있는 날이 그 얼마나 되려나. 가을 날씨도 참 좋다. 다리야 튼튼해져라. 무럭무럭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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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를 보면 구급차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고, 나비를 보면 나비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근데 오늘은 나방을 보더니 나방 노래를, 사과가 먹고 싶다며 사과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난감한 요구이지만, 엄마는 생활 예술인. 가사와 곡을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불러줬다. 나방 노래의 가사는 '못생겼지만 소중해'가 요지였는데, 생각해보니 그닥 못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못생김의 기준이 뭐란 말인가. 개념부터 바꿔야 아이한테 좋은 생각을 심어줄 수 있겠다. 암튼 아이는 엄마의 노래를 듣기 좋아한다. 그리고 이상한 트롯트처럼 곡이 나와도 따라 부르기까지 해서 너무 웃기다. 뭐, 결국엔 집에 가는 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나방도 집에 가서 밥 먹고 목욕하고 잠자네'란 엉터리 방터리로 가사가 바뀐다.  

요한복음 3장, 마르고 닳도록 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의 구원에 대한 말씀을 읽는다. 예수를 믿는 것의 결과는 재산이 늘어나거나 자식이 잘 되고, 무병 장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은 주변인의 삶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기독교 부패의 문제는 위와 같은 기복신앙적 복이 예수를 믿어 주어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 아니 내게 열어주신 진짜 삶이란 무엇일까. 평생 그 비밀을 하나 하나 발굴하며 기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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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무지 가리는 성격+복수심은 정말이지, 개선되어야겠다. 그 사람 말버릇 안좋은 건 기분 나쁘지만, 내게 그다지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영향력도 미미하지 않나.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면 정말 먼지같은 일이다. 쓸데 없는 일에 마음 쓸 시간에 진짜 삶에 대해 1초라도 더 생각하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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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잠 안자려고 무지 떼쓰던 아이는 오늘은 거짓말처럼 조금 보채다 예전처럼 다시 잤다. 이렇게 또 작은 언덕 하나를 넘은걸까. 어제는 '떼쓰는 아이', '동생이 태어나는 것'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여 도서관에서 책 세권을 빌려와 뒤적였더랬다. 막상 빌려온 책에는 이 맘 때 떼쓰는 건 당연하며, 동생 보는 것 이외에도 이후에 벌어질 아주 다양하고 험난한 일들에 대해 더욱 소상히 적혀있구나. 지난 명절 땐 부모님께 아이 키우며 이렇게 힘드셨냐고 여쭈었는데, 아주 먼 예전 일이라 다 기억 나지 않는다 하셨다. 오늘의 절체절명의 이슈가 며칠만 지나도 망각의 상자에 던져지는구나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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