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유치가 이슈이다. 세계의 축제 우리 나라에서 하면 참 좋다는 것은 지난 2002 월드컵 경험만 봐도 누구나 다 알것이다. 금전적인 이득도 크겠지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니까.
하지만 IOC위원들이 평창 사찰을 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IOC 위원들 캐리커쳐를 그려 증정하고, 체육관에 모여 영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북한 같아서 살짝 쪽팔렸다. 시설이나 문화력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냥 아부잖아 -_- 그런 발상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오는건지 모르겠다. 위원들은 인상 깊었다고 하는데, 긍정적인 의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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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짜 부러웠던 것은 뮌헨이나 안시에서 주민 사이에 환경이나 기타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논의도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런 비판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부러웠다. 문화의 창달보다는 눈 앞의 금전적 이득에 일희일비 하는 것 같은 우리의 모습에 좀 속이 쓰렸다. 지난 G20 때 금전적 환산 가치가 몇백조였다는데, 우리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던가. 어쨌거나 좀 잘 되어서, 제일 낙후되었다는 강원도에 사는 주민들이 돈 가진자들에게 휘둘려 동원되고 피 눈물 쏟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생각. 땅 엄청 사놓았다는 이건희나 문선명은 분명 잘 되겠지) 그리고 다된 밥에 밥숟가락 올려놓은 사람은 제발 자화자찬하지마라. 지난 두번의 실패와 차별화된, 특수한 공이 있다면 반 이상은 연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거 자체가 자동 태교고 안구 정화로구나. 내시키 우리 연아. 너도 죽어라 고생했으면서 한국 정부 도움 받아 잘되었다는 뻥은 왜 쳤니 ㅠㅠ 도움은 개뿔.




주일예배 후 일산 킨텍스에 리듬 오브 아프리카 전시회 보러 갔다. 호우주의보 내린 날인데도 애들 동반한 부모들로 드글드글 했다.

아이들은 참 천사같은 존재들인데,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부모들은 세상에서 젤 귀한 일을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데 이렇게 붐비는 곳에서는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그렇다쳐도, 부모들이 자기네 애들을 돌보느라, 또는 돌보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짜증스럽다고 자기 아이에게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소리지르고, 인격적 모독을 주는 부모들도 있었는데, 이럴 거면 굳이 예까지 올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집에서 뽀로로 비디오 보는게 아이들 정서에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이 공간이 너무나 붐비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휴게실의 의자가 몇 개 없어서 자리를 맡으러 뛰어야 하고, 매우 높은 데시벨의 대화가 옆에서 쩌렁쩌렁 울리고, 수 명의 아이 우는 소리가 귀에 가시처럼 박히는데 한가롭게 즐거워 할 사람은 여간 마인드 콘트롤 하지 않고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에 다녀온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도 벚꽃축제 시즌을 맞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넓은 휴게실과 넉넉한 의자들이 확보 되어 있어서 잠깐 쉬고 싶을 때, 샌드위치와 음료를 먹으며 잠시 쉬어갈 때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킨텍스 사이즈의 재미있는 전시관들이 수십개가 있잖아 -_- 이건 국민성 운운하기 이전, 비싼 땅값, 풍성한 문화 및 자연유산의 없음, 주체측의 장삿속만 챙기는 구조를 논해야 하는건가.

육아의 거대한 파도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이런 얘기 쉽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엄마들은 "니가 그 상황 돼봐" 이렇게 얘기들 하겠지? 히히

사람들로 붐비는 화려한 도시, 확실히 메리트가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이 키우기에는 참 별로구나.버스 타고 갈 때 보이는 미아리 송천초등학교, 바로 맞은 편에 수십개의 단란 주점들이 리모델링까지 하며 영업을 계속 하는 걸 보면 그냥 늘상 한숨만 나온다. 이 곳은 너무 좁은데다가 비싸다고! 철학도 없고 무조건 돈이 최고. 에휴



한 모임에서 "대한민국의 남자 99.9%는 바람을 피우거나 성매매 업소를 죄책감없이 드나든다고 보면 된다" 라는 말이 힘을 얻어가는데, 별 말 없이 그냥 웃어 넘겼다. 남편 뿐 아니라 주변의 남자들, 엄밀히 말하면 나와 남편의 절친한 남자 친구들은 그런 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지만, 어찌보면 괜히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물정 모른다느니, 알고 보면 걔들도 다 그런다느니 하는 억측을 받은 후 괜한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 나라는 남자들이 바람피우기 좋다. 아직도 성매매업소 드나드는 것을 비지니스의 일부로 여긴다. 대형교회 장로이자, 기업가 출신 대통령 가카께서 사람들 다 있는데 마사지 걸이 어쩌니 저쩌니 당당히 논하는 것은 바로 그 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사례다. 주변에 남자 인구는 많은데, 싱글 여자친구들에게 소개할 진정한 의미의 좋은 싱글 남자가 없는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성매매를 단속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뿌리깊이 박힌 남성 우월주의와 가정 파괴적인 문화(야근, 음주)가 해결안되면 여자들은 언제까지나 돈만 벌어주면 입 다물고 뭐든 참아내야 하는 애 낳고 키우는 도구 내지는 성적인 노리개가 될 뿐이다. 선진문화 접할 기회 없어 못 배운 어른들은 그렇다치고, 우리 또래 시키들은 왜 그러는건데. 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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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실 때 '어린 양을 이리의 소굴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실 때 얼마나 가슴이 저릿저릿 하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말씀 뒤에 이렇게 덧붙이셨지.

그러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황혼이혼이 신혼이혼보다 늘어난다는 기사를 보고 상당수가 혀를 끌끌 찰지 몰라도, 나는 환영이다. 그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인내의 미덕, 문자 그대로는 좋다. 그러나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이 늙어, 또는 병나서 죽을 때까지 희생하고 인내만 해야 한다면 이건 절대 정의롭지도, 덕스럽지도 않다.

죽을 고생해서 결혼을 지키려 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 그래서 결국 이혼의 뼈아픈 경험을 한 몇몇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이혼 이후의 삶에 찾아오는 값진 연륜의 열매를 보았을 때, '에이 그래도 참고 살자'라고 했더라면 자신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황폐하게 만들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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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끈끈함과 개인의 행복을 양 편에 놓고 저울질 하는 것은 괜한 짓이고, 특히 한국에서는 입만 아픈 논쟁이다.
당연히 개개인의 행복이 전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애라는 것은 약자에게만 가혹한 폭력으로 변한다. 비슷한 류에는 나치즘 등이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이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우리 외가쪽 가족의 일부는 지금 광주에 살고 있다.
그 날의 기가 막힌 사건은, 친구와 가족이 죽어나간 사람들에겐 피 끓는 한이다.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엄연히 민주화운동으로 인정 받고 있는 오늘날, 고결한 희생을 더럽히려는 움직임에 가슴이 메어질 것 같다.
산천은 파헤쳐지고, 상식은 무너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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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곱씹으니 정말 마음이 아리다. 요 전에 국가 보훈처에서 이 노래를 5.18기념식에서 못부르게 했다는데, 정말 똘추모임이 아닐 수 없구나. 뭐, 민주주의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오늘 날에는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산 자여 따르라
살고 있니 너는


소녀시대 노래를 거꾸로 들리면 심한 음란성 메세지가 있다고 어떤 기독교 강사가 발표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웃길 뿐이다. 굳이 거꾸로 듣지 않아도 요즘 대중 가요에는 어느 하나 노골적으로 성적 표현이 가미된, 또는 내재되지 않은게 없다. 그 메세지를 확실히 전하기 위해서 무대에서 가수들은 복장과 섹시한 안무로 초딩부터 할아버지까지 어필한다. 길을 가다가 초딩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야한 노래를 부르고, 중학생 사촌이 성행위를 묘사한듯한 인기가수의 안무를 따라하는 걸보면, 오늘의 성에 초점을 맞춘 대중문화가 얼마나 사회에 편만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읽고 있는 책에 초등학생이 저학년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사례가 나오는데, 이제 이런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닌게 되겠지.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건지, 아니면 타락한 문명이 한번 뒤엎어질런지.


사무실에 건물주 아줌마가 오셔서 대표님과 이야기 하며, 주고 받을 것을 서로 따지는데 속으로 '사람 참 못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유도 없이 그리도 적대적인가.

어릴 적 6가구와 공장 하나가 1개의 재래식 화장실을 공유하던 시절,
집주인 아줌마가 6개 쪽방을 돌며 월세를 징수하러 왔다 가면
20대였던 엄마가 늘 울었던 기억은 먹고 살기 편해진 요즘도 쉽사리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 때부터였나보다. 집주인이 싫어진 것은.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 재산권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생명권보다 더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가 바로 재산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면 그것은 공산주의자 내지는 빨갱이가 된다. 아니 그럼, 가난한 이는 이 사회에서 말살되어야 하는 해충같은 존재란 말인가.

이쯤되면 몇몇은 불온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고,
나 역시 무조건적인 선입견은 고쳐야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불온한 것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도 그냥 입 다물어야 하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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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최근 다큐 '자본주의:러브스토리' 보며 울다 웃다 했다.
모두 봐야한다.


http://blog.naver.com/n4002?Redirect=Log&logNo=30086953478

친절하게도 누가 만들어놓아주셨구만

북한여성인권에 대한 세미나를 성공리에 마쳤다. 연말에는 인권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좋은 포인트를 많이 얻은 것 같아 기쁘다. 특히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탈북자 인권, 늘 맘 속 한 귀퉁이에 꺼림칙 한 것이 있었는데, 명확해진 것은 '인권은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이다. 뻔한 사실인데도 왠지 큰 깨달음같네.

동북아미시사회연구소 노귀남 박사님은 "자꾸 고발, 폭로 할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권에 도움되는 일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은 모호한 인권이 아니라 그네들의 생존권이라고 했다. 생존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서 구걸하고 있는 아이가 탈북한 꽃제비이든, 한족이든, 조선족이든간에 지구상에서 그런 아이들이 있는 상황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이다. 인도적이고, 보편타당한 법칙으로 유도해야지 자꾸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은 가장 약하고 힘 없는 이들을 더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핵 포기해야, 인권 개선해야 대화 하겠다는 등 조건을 갖다붙이는 것은 오히려 대화의 채널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약하고 가장 피해보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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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그 어느 곳이든, 배가 고프면 여자들이 몸을 파는 일이 생겼다. 기근이 심해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여성과 아동들이었다. 탈북여성들만의 특별한 경험은 아니다. 
인권에 대한 유엔 프로토콜이 더욱 힘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거짓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남한과 북한, 중국에서 어떻게 하면 정의가 큰 강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남편이 최근 갖고 온 책 '고등어를 금하노라' 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양심의 소리는 강바닥에 깔린 돌 같아서 사회에 흐르는 비양심의 물살을 조금이라도 막는 존재라고 했다.
물살이 셀 때에는 더 버티지 못하고 날라가는 일이 있어도, 그 돌들은 아주 귀한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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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피디수첩을 보며, 나는 정의와 양심에 목숨을 건 한 남자를 보았다. (요즘 시대에!)
최피디, 피디수첩, 엠비씨 완전 사수할거야!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더러운 검찰 놈들, 박기준 한승철이 왠지 그에 합당한 처벌을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기쁜 것은, 그가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유사한 일들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문자 그대로 어제보다 좀 더 나은 곳이 되었다.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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