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를 매고 준이 손을 잡은채, 시장에 다녀왔다. "아저씨, 두부 주세요!" 끝을 올리는 말투에 아저씨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미꾸라지를 구경하다가 나오신 수산물 가게 아저씨한테도 배꼽인사를 했다. 두부 한 모를 달랑이며 제법 먼길을 걸어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김이 모락모락하는 두부를 몇 조각 달라했다. 밥먹는 동안 경이를 씻기느라 곁에 있지 못했는데, 감기를 앓는데도 깨끗이 비워주었다. "상준이가 엄마 아가 들어서 무거운데 두부도 들어주고 밥도 싹싹이 먹어줘서 고마워." 말하는데 눈물이 불컥. 아이 키우는게 쉽지 않지만 아기가 둘이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평생토록 그리워 할 것 같기도 하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둔다. 네가 내게 준 행복을 다 갚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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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악의도 없었는데 비수처럼 꽂히거나 종일 돌덩이처럼 맘을 짓누르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는 다른 것보다
쓸데없이 많은 말을 줄여 한 번 임팩트 있는 말 하는 법,
시기와 수위가 적절한 한마디 하는 법,
압박보단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법을 가르쳐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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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그 교육 받았어야 했는데. 이불을 팡팡 하이킥하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덜 했을텐데.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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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울려서 미안해, 짠한 우리 둘째. 엄마가 내일은 더 많이 관찰해서 너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볼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우리 첫째. 그래도 넌 아가때 엄마가 허리가 끊어지도록 많이 안아줬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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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젤 싫은게 진상부리는 사람인데,

아가들 잠 때문에 한바탕 고생한 후

택배 가져가라고 인터폰을 밤 늦게 울리는 경비아저씨한테 진상부렸다.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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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세 번 아플 때 한번 아픈,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였건만 아들 둘 생산하니 몸살이 한달에 한번 찾아온다.

언제나처럼 작은 녀석 목욕통에 누이니 큰 녀석이 와서 등을 짓누르며 방해하길래 '상준아 엄마 콧물이 왜 이렇게 나올까', 한 숨 쉬듯 딴 소리를 했다.  

그런데 녀석이 다다닥 뛰어가서 손수건을 갖고 와서 내 코에 대고 부드럽게 닦아 주는게 아닌가

찡한 녀석, 즈의 아빠 닮아 다정하기는.

이렇게 오늘도 몸살을 이길 힘을 주시니 감사.

라디오에서 보사노바가 흘러나와 막춤을 췄더니
"엄마는 이런 음악이 좋아?"
"응 엄마는 이런 음악이 너어무 좋아. 상준이도 좋아?"
"아니, 난 옥수수 수염 노래가 좋아."(자주 틀어주는 동요)

그래도 동요 틀어달라고 안하고 엄마를 따라 춤추는 아들. 오래도록 기억할만한 고마움. 오늘도 짜증내서 미안해. 내일은 더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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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여도, 촛불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고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다. 절대 웃지 않을 것 같은 할아버지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고 뻘쭘한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를 훈훈하게 바꿔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기를 기다리고 환영하는 이유가 거기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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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돼지우리처럼 어지럽히고 속옷차림으로 배를 내놓고 소파에 뒹굴곤 하던 동생 녀석. 엄마는 한숨을 쉬며 '얼른 장가보내버려야지'하곤 했다.

그런데 결혼을 며칠 앞두고 자기마저 집을 떠나면 엄마 마음이 어쩔고 염려하는 동생을 보고 어쩐지 짠한 기분이 들었다. 맞다. 나도 이젠 엄마.

'니가 아무리 애물단지처럼 굴었어도 엄마한테 너는 빛이야. 집에 빛이 없어지면 얼마나 어둡겠니. 그니까 엄마한테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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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아기를 본다. 마음을 천국의 빛으로 가득 채워주는 내 사랑.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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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고된 날이면 그 날을 생각해. 너네 둘이랑 아빠랑 같이 자라섬 캠핑장에서 텐트 치고 멀리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재즈음악을 듣는거야. 소세지나 감자, 고구마, 마시멜로우를 구워먹어도 좋을 것 같아. 그 때가 되면 이 엄마는 그 좋아하는 와인을 맘껏 마실거란다. 흥이 나면 너네들 손을 잡고 막춤을 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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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육아전투를 위해 아홉시에 누워 상상의 나래
...근데 몇 년 후에나 가능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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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늪에서 비빌 여유조차 없다. 힘내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상준이 열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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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병자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이 이리 된 것이 이 사람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물어볼 때, 뭐 이 따위 엉터리 질문이 있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 한국 부모에게서 유독 두드러진다는 죄책감, 소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절대 난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내 잘못으로 고통받지 않으면 좋겠다.  

오늘 예배 때 들은 말씀에서는 죽어야 산다고 했다. 웬만해서는 절대 지지 않으려 하고, 행여 지는 듯 한 상황에서는 털끝만한 자존심이라도 남겨 두려 하는 나로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죽여도 화병으로 암 걸릴 지경으로 가지 않고 선한 기운으로, 늘 푸른 생명력으로 살 수 있을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죽어서 진짜 사는 삶, 나도 살 수 있을까. 우리 애들에게 그걸 가르쳐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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