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길, 맞잡은 너의 손이 제법 두툼하다. 내 쬐끄만 손을 넘어서는 영광의 그 날이 날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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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놈은 지난 밤 두 번의 구토와 열댓번의 설사를 했다. 종일 뭣만 먹으면 토해대더니, 저녁엔 할머니가 끓여준 쌀 죽을 먹고 토하지 않았다. 옆에서 구운 계란을 우적우적 먹어대는 형아를 원망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며 내내 징징 운 것 빼고는 꽤나 큰 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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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 녀석의 목숨을 부지시켰다. 이 얼마나 영광된 날인가! 나여. 잘하였도다. 토닥토닥

김영하씨 책을 읽다가 생각. '내면이 있는 아이'로 키우면 되겠구나. 종이 한장,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외로움과 친구 먹는 아이로.

그렇지만 현실은, 오늘도 근근히 목숨 붙여놓은거. 그래도 잘했어, 배우리. 목숨 붙여놓은게 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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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면이 있는 사람과는 짧은 시간을 보내도 동기부여+힐링이 있었다. 부족한 인간관계를 억지로 돈독히 한답시고 앞에 사람 앉혀놓고 본격적으로 통화를 하고 종일 소모적으로 카톡하는 사람이랑 굳이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다. 어린시절의 의리랍시고 애써 일방적으로 지켜왔던 관계도 보내주자.

야당도 빌빌대서 냉소만 자아내는 요즘, '여혐을 혐오'하는 메갈리아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거나 비하, 혐오하는 내용을 미러링해서 입장을 바꿔보게 만들고, 호탕하게 조롱한다. 요즘 가장 큰 각성의 원천이다. 


후회되는 삶의 지점들을 되짚어보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았지?'가 아니라 '왜 화내지 않고 왜 가만히 있었지?' 싶은 게 많다. 


요전 첫직장의 기관장으로부터 받은 성희롱을 페북에 나눴을 때, 몇몇 입똑똑한 남성들이 '그럼 왜 그걸 놔뒀니?'하는 뉘앙스를 비췄다. 정말 속상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어릴적부터 학습된, 노예교육 때문이었다. 그 사람부터 얻을 게 하나도 없는데도, '나긋나긋, 넌 여자니까 더 참아야 해. 웃어 넘겨'라는 세뇌메세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디 성희롱 뿐이던가. 학교, 교회, 직장, 길거리며 대중교통에서도 만나는 각종 마초, 꼰대 또라이짓에도 그러려니 침묵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치욕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 


남들이 만들어준 코르셋에 맞춰 산 햇수가 적지 않다. 그런 내게, 아마존 여전사처럼 빛나는, 생각하고, 설치고, 떠드는 '보지대장부'라 자처하는 여인들이 이 헬세상을 뒤집어주면 좋겠다. 차별없는 세상에서 내 아들들도 더욱 행복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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