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짜 하기 싫은 일을 질질 끌고 있다가

지금 이걸 해내지 못하면
정말 해내고 싶은 그 일도 잘 해낼 수 없을거라고,
지금 이곳에서 대충해 버린다면
멍석이 막상 깔려도 훌륭한 결과물을 낼 수 없을거라고,
스스로를 다독다독

힘내자





천사야 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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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 1집 자켓사진 ㅋ - 양옆 세모를 누르면 사진이 넘어가요


회사가는 버스에서 항상 지나치는 길, 휴일에도 가기는 싫었으나 재우가 가보자고 하여 평창동에 나들이 갔었다.

그간은 잘 몰랐는데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 있고
무언가 아티스틱한 작업실이 곳곳에 숨어있는 매력적인 곳


"재우, 우리는 돈을 얼만큼 모아야 이런데서 살 수 있는거야?"
"아마 (어찌하더라도) 불가능 할걸?"
"천국에서는 우리 이렇게 좋은 집에 살 수 있는거야?"
"음, 천국에는 공간의 개념이 없어서...(어쩌고 저쩌고)"
"오케이 거기까지. ㅋㅋ 재우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여기다 작업실 차려줄게. 음 그럼 어떤 직장을 다녀야 할까?"


아직 철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재우랑 손잡고 예쁜 집구경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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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올려보는 우쿨렐레 연주곡!(그래봤자 두번째)


이재우사마께 바칩니다 (아잉-_-;;)


곡: L-O-V-E - Nat King Cole, 그 밖의 다수가 불렀죠
노래와 우쿨렐레 연주: siji


우리 학생들한테 가르쳤던 노래, 우쿨렐레로 치면 은근 재밌을 것 같아서 시도했지요.
초보 주제에 굉장히 신경쓴 전주 부분을 좀 귀기울여 주시기 바라고효 - ㅋㅋ

역시 홈레코딩은 조악하나 이번에는 엠피삼 플레여가 아닌, 골드웨이브 프로그램으로 녹음했다는 거! 마이크는 여전히 삼성 핀 마이크입니다만...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왔다고 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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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에 심취한 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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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n rumberos begin an informal descarga, or jam session, on the street in Ha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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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bers of the Buena Vista Social Club project Ibrahim Ferrer, Pio Levia and Compay Segundo harmonize in Havana.



나는 정말이지, 춤 출 준비가 되어있다.


사진 출처: http://worldmusic.nationalgeographic.com


여느 때 처럼 퇴근 지하철에 올라 두 세 정거장을 지냈을 무렵, 보통사람이라기엔 무서운 포스를 풍기고 있던 온통 분홍색으로 치장한 아주머니가 천둥과 같은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다 죽여버리겠어!! 니 자식!!......니 입고 있는 그 옷은 누구를 죽여서 만든거야?(그 밖의 말들은 너무 무서워서 생략)"


책을 들고 있었던 소심한 나는 행여 아줌마한테 책 잡힐까봐 슬그머니 책을 덮으며 지난 주말에 지하철에서 마주친 또 하나의 광인을 생각했다. 훤칠하고 깔끔하게 생겼으나 역시 보통사람이라기엔 특이한 옷차림에 선구자적인 말투로 그는 외쳤다.


"여러분, 지금 저 칸에서 별거 아닌 아주머니가 저에게 메롱메롱 하고 내렸습니다......이것은 우리 나라를 말살시키려는 일본의 계략입니다......."


웃고 지나치기엔 섬뜩한 광경들,
도대체 어떤 아픔이, 분노가
한때는 사랑스런 아기였을 저 사람들을
제 정신을 가지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끔 만들었을까


아줌마의 저주는 물론 불특정다수를 향한 것이었으나 나는 왠지 상처입고 너무나 울적하여 근혁이를 불러냈다. 근혁이랑 눈물콧물 흘리며 불닭을 먹고 수다를 떨고 나서 가슴에 뻥 뚫렸던 구멍들이 하나둘씩 아물었다.


그들에게 함께 수다 떨 동생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랑먹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사랑받지 못하여 앓고 있다.




무엇에 심통이 났는지
예배시간 하나님께 아주 유치하게 심술을 부렸다.



조금의 인내도 하지 않으려고, 나 죽겠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하나님은 오래 참아주신다.


1. 음악치료학 특강등록
2. 통계학과 SAS 공부


부담이 많이 되지만
할일이 많은 것은 감사한 것이다.

비록 여기도 찝적, 저기도 찝적거리는 르네상스형 인간이나
하나님이 여태껏 인도하신 길을 살펴보면
숱한 성공과 실패를 통해 일관성을 가지고 일정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방향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두근거리니 좋지 아니한가

올해는 조금 더 명확히 보여주시길
그래서 신나게 미친듯이 그길 달려가게 하시길


살다보면 진학, 취업, 승진, 자격증 등등을 위해 도전할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근 30년 살아오며 느낀 것은 "~~에 도전해 보기로 했어"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초를 치는 인간들이 등장한다는 것.
개중엔 원래 항시 재수없게 굴던 인간도 있지만 그간 나이스하게 대해주었던 인간들도 있다지.


"반에서 몇 등 이내라도 힘들대"
"그거 토익 @@@ 못 넘으면 절대 안될걸?"
"도전자들 스팩들이 대단한데 어디 되겠어?"
"겨우 그 기간 공부한거 가지고?"



이러한 맨트는 '너의 위치가 지금 이러이러 하니 이러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류의 자상한, 환영할만한 일침과는 차원이 다르다. 느낌이 팍 온다.



남이사 못오를 나무 쳐다보던 말던
mind your own business
남 잘 되는거 싫은 이들,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거지.
꿈을 꾸는 것부터가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걸.



그리고 귀얇은 족속들 (나를 포함)
아랑곳 하지 말고 묵묵히 전진하자
전진도 실패도 성공도 주제파악도
다 스스로 하는게 최고다.

창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막힐까봐 입석을 구했다.

10시 반에 출발하여 4시 반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차 안에서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는 객차간 통로였다.
몇 역을 지나니 정말 무섭게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차기 시작했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민족의 대이동 때, 그들은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는 걸까), 무거운 짐 잔뜩 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양복입은 젊은이들..

한 시간 쯤 서서 가는 동안은  문가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며 귓가를 두들기는 라틴 비트와 열차의 흔들림을 즐겼다. 카메라로 창 밖의 초봄 전경을 동영상으로 찍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러나

머지않아 통로 안에는 필리핀어로 추정되는 '꼴락깔락~'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아무데나 손바닥 만한 틈만 나도 털썩 앉아 서있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화장실을 이용한 누군가가 지독한 그것을 배출해놓곤 물을 제대로 안내렸는지,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그 냄새는 외국인들과 어르신들의 익숙하지 않은 강한 체취와 뒤섞여 폐부에 스며들었다.
슬슬 짜증이 날 무렵 담배와 라이터를 만지작 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날 긴장하게 한 무서운 포스를 풍기는 아저씨가 신발을 벗고 내 발을 깔고 앉아  폐쇄공간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승무원에게 한 차례 혼났지만 아저씨는 이후에도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틈을 살폈고, 나는 아저씨가 나타날 때마다 바짝 경직되었다.
세면대에서 구역질을 할 때쯤 난 더 이상 이어폰을 꽂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너무나 무료했던 것일까, 대략 두 시간 동안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짤짤이를 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소설에서나 보던, 최빈곤층이 주로 이용한다는 3등칸 체험을 한 셈이었다.

다리의 통증이 극에 달할 무렵, 이 모든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내 나라에 와서 안그래도 좁은 땅, 더 비좁게 만드는 외국인들이 미워졌다. 도대체 교양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은 촌부들이 경멸스러워졌다.

한참 이토록 못된 생각을 하다가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나의 삶의 목표를 생각하였다.
그간 나의 '봉사활동'은 주로 모든 것이 다 세팅된 상황 속에서 살짝 기분좋을 정도로만 희생하고, 칭찬은 와방 받는 것들은 아니었을까.
노숙자 사역하시는 김범석 전도사님이 '왜 나를 이런 일로 부르셨어요' 하고 울며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 완전 멋지다'라는 철없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반성하였다. 그리고 그 분을 생각하였다.

시공을 초월하며 살던 하나님의 아들은
무거운 인간의 몸을 입고 답답한 시간의 틀속에 들어오셔서
당시 사람들이 최악의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품어주셨다.


돌아오는 길, 멀미가 나서 버스 중간에 내려 터덜터덜 세 정거장을 걸어오며 생각했다.  


응, 정말 자신없어. 난 도무지 약자와 가난한 자를 사랑할 수가 없어.
그 분이 힘을 주시지 않으면
정말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구나.



쿠바는 아니지만 나름 먼 창원 췌쉐진 기자네 집에 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눈부신 풍경이 싱그럽고
기차안에서 먹는 구운계란은 참 고소했다
맨토스랑 건포도 같은 주전부리 건내는 옆 좌석 아저씨가 정겨웠다
간만에 만난 췌쉐는 변함없이 나의 이런 저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남쪽에는  봄이 먼저 오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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