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시장을 보면서, 또 이사 등의 이런저런 문제를 처리하면서 엄마가 이 동네 30년간 살며 쌓은 단골집들과 거래를 하게 된다.

단골은 인터넷 검색해서 나오는 최저가 업체와는 좀 다르다. 30년 모니터링의 결과에서 나온 신뢰가 있다.
만약 일의 퀄리티를 확실히 보장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저 아주머니에게 한 5만원 더 얹어주어도 아깝지가 않은 게 단골이다.  
아줌마 집에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다면, 하나라도 더 팔아주려는 게, 손님을 더 물어다 주는 것이 울 엄마같은 단골 손님의 역할이다. 이것은 시장의 원리에 심각하게 위배되지만, 사회적인 유대감은 더욱 강화된다. 이게 어떻게 작용하냐면, 다음 번에 엄마와 그 가족, 또한 엄마가 소개시켜준 가까운 지인들은 더욱 양질의 서비스와 합리적인 가격을 선물로 받게 된다. 부정직한 사람은 단골 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이 생리이다.

이 유대감과 자동 정화기능은 두꺼운 항아리 속, 향기롭게 묵은 장아찌 간장처럼 진국이다. 이것은 사회자본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사회자본은 그 어떤 자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졌고,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게임이다. 나는 울 엄마가 수많은 시행착오로 쌓은 사회자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단골과 거래하는 엄마를 보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사회를 그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턱 앞에서 180도 방향전환을 해버린 것은 아닐까. 칼로 베어낸 것 같은 사회보다는 사람냄새나는 세상이 훨씬 이득이다. 사람들도 내면에는 모두 사람냄새나는 따뜻함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커뮤니티의 대세인 인터넷은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속성상 그것을 구현하기 어렵다.  너무 섣부른 개인주의 수입으로 사람들이 병들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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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교회 때문이어서 그런지,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대략 국민의 20% 여도 욕을 먹고 있다는 진단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그 말처럼 거창하거나 멀지 않다. 엄마를 보면 커뮤니티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다.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의 신앙아래서 모이는 교회는 고가치의 사회자본을 만드는데 아주 유리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아니지, 사실은 그 이상의 엄청난 파워를 지닌 그룹이지.

교회의 리더들이 어떻게 하면 교인 늘리고, 교회건물 높이고, 돈 많은 이들의 지갑을 움직여 헌금 높일까만 급급하지 않고, 자기 동네에 불우한 이웃을 어떻게 하면 제일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제발 목요급식으로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덜 불우하게 만들 수 있을까만 생각해도 이미지는 물론이고, 교회 자체가 순수하게 다시 본디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텐데. 몇몇 교회 빼고 목사님들 월급걱정은 이제 안해도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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