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를 읽을 땐 소년이 자기 가족 다 팔아먹게 만드는 터키쉬 딜라이트의 맛이 심히 궁금했었다.
C.S.Lewis는 그 것이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인 양 묘사했던 거지.
남편이 출장 갔다온 상사가 사온 터키쉬 딜라이트를 내 맛 보라고 갖고 왔을 때, 적잖이 실망했다.
서양인들은 몰라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혀를 내두를 과도한 단맛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페렐란드라에서는 금성에서 움직이는 섬에 자라는 황금빛 열매가 나오는데,
그 맛을 표현하자면 '달콤하다, 시원하다, 상큼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지구상에서는 알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맛'이며, 하나를 먹으면 이미 모든 것을 이룬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맛이라고 하는데
와안전 빠져들었다. 꿀꺽. 무슨 맛일까 진짜.
듣도 보도 못한, 가장 높은 삘딩보다 더 높이 치는 파도라던지, 괴상한 생물체 묘사도 재미있지만,
나는 이런 맛있는 묘사 부분이 제일 좋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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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의 어린 시절의 공통점.
주부 요리책을 들여다보며 이것은 무슨 맛일까 상상하기 놀이를 했다는 것.
우리가 살이 찌는 건 어쩌면 당연해. 이렇게 음식을 좋아하는데
'생각이 없어서 안먹었어' '귀찮아서 안먹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젤 부럽다. ㅋㅋㅋ





남편을 처음 사귀고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다정다감한 하쿠사마가 꼭 그와 닮아보였다. 그 다음부터 나는 그를 재우사마라고 불렀다.(사마는 일본어로 '님'이란다)

나도 먹을 것 주는 사람이 제일 좋아



어느 정도 사귀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얼핏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순둥한 곰 캐릭터가 절대로 아니었다. 늘 온유한 편이었지만 취향도 까다롭고 보수적이어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나와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고 자주 울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나에겐 꼭 필요한 존재로 다가왔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슬란 다음으로 마시위글인데, 그는 길쭉한 초록색 생명체이다. 음울하지만 지혜롭고 바른 길로 아이들을 인도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잠시 마시위글이라고 불렀다.

그림은 맘에 안들지만 대략 이런 느낌?



그런데 오늘 스타트랙을 보고 나 혼자 재밌어가지고 혼났다. 거기 나오는 스팍이 완전 남편 캐릭터인데다가 얼굴도 왠지 닮은 것 같았다. 스팍은 평범한 인간보다는 지극히 논리정연하고 늘 평정을 유지하는 존재이나, 마음 한 쪽에 감성적인 구석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표정은 무표정하고, 아주 가끔 귀여운 표정을 보여준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미 나는 남편을 스팍이라 부르고 있었다.

감성적 인간과 논리적 버칸족의 혼혈 뾰족귀맨 (왼쪽)



아직 신혼이라서 그런가? 쳐다보기만 해도 너무 좋고, 자꾸 말걸고 싶고, 계속 옆에 있고 싶다. 주말이면 그래서 너무너무 신난다. 결혼 한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한테 되도록 미루지 말고 결혼을 빨리 하라고 권한다. 같이 살면 참 좋은게 많다. 평생 재미있는 별명 백개 붙여줄거야-

스팍과 벚꽃행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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