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다리는데, 말쑥한 할아버지 한 분이 와서 급행열차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셨다. 이래저래 대답해드렸다.
알고보니 할아버지는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가 내린 것. 택시를 타고 급행열차 타는 역에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기사가 또 엉뚱한 곳에 내려 주었다. 고생이 많았을 이 분은 재차 물어보시고 확인하셨다. 말투도 또렷하시고 허리도 꼿꼿하신데도 본인의 연로함을 한탄하셨다. "나이 들면 머리가 안 돌아가.."
다섯 번 정도 같은 내용을 말씀드렸는데, 또 다른 아가씨한테 여쭈어보셨다. 이 아가씨가 슬금슬금 할아버지를 피하는데, 어쩐지 서글퍼졌다.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고치는데, 머리 하얗게 샌 쭈글쭈글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내 모자 잘 씌워졌어요?" 물으셨다. 옆으로 돌아간 모자를 앞으로 잘 씌워드렸다. 할머니의 눈빛이 왠지 처량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이 할머니, 상급자 레인에서 쉬지도 않고 (젤 힘든) 자유형을 하고 계신게 아닌가. 멋졌다.

언젠가 관절이, 지력이 내 말을 듣지 않는 날들이 오기 전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
튼튼하고, 당당 털털하고(피해의식 없도록), 잘 웃고, 깔끔하고, 화려한 옷을 즐겨입는 할머니가 되는게 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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