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아니면서 탄핵 가결에 온 맘을 쏟아서일까, 매사가 귀찮고 허탈하고. 헌재 판결까지 남았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인생 자체가 기다림인데도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애들 늦잠 때문에 튼 티비에서 바이블 퀴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촌스러운 미국애들이 뻔한 신앙을 가지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거는구나'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몇 분만에 그런 생각이 뒤집혔다. 몰입하고 정성을 다하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숭고한지, 보고 나서 그간 나를 괴롭히던 허탈감이 깨끗이 씻겨나갔다. 머리를 올려묶고 빨래를 돌렸다. 아이들 아침 세팅을 끝내고 라디오를 틀어 깨웠다.

어린 날 그렇게 열심히 무엇을 한 적이 있었나. 4부 합창곡을 쓰고 대상을 수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 더 재밌었던 순간은 같이 화성을 몇달간 연습하고 옷을 맞추고 안무를 짜고.  힘을 합쳐서 같이 열매를 거두는 경험이 얼마나 갚진지. 준이와 경이에게 꼭 그런 경험들이 있으면 좋겠다. 비틀즈처럼 블랙아이드피스처럼 이름을 날리진 못한대도 동네친구들이랑 재미난 프로젝트를 미친듯이 몰입해서 해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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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친구들이랑 매일 산에 나가는 상준. 친구 몇명과 탐험대를 결성하여 화석을 찾겠다고 하던 게 떠오른다. 히히 우리 아들 딸들. 수업 준비나 해야겠다. 

아들 둘 엄마지만 공동육아터의 딸들에게 언제나 마음이 쓰인다. 요즘 아이들의 주 관심사 중 하나는 성역할. 

옛이야기와 접목한 음악감상 수업 중, 용감한 다섯 아이의 모험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래미 하나가 묻는다. 다 남자에요? 

아뿔싸. 그렇구나. 

옛이야기 중 주로 모험을 떠나는 애들은 다 남자다. 딸들은 주로 딸이라서 버림받거나, 구조받아야 하거나, 강제 결혼을 한다. 이 뭐, 개같은 경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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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가 장난치고, 에디가 발명할 동안, 분홍 드레스를 입은 루피는 쿠키를 굽는다. 로보트 일색의 만화도 마찬가지다. 남녀의 성비는 거의 5:1. "남자는 힘이지" 류의 대사도 종종 들린다. 아이들에게 만화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다. 화면은 화려하고 예쁜데 젠더에 대한 고려가 없다.  그나마 가끔 보여주는 채널이 외국채널인데, 성비와 폭력성 면에서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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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들이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음 좋겠다. 용감하게 도전할 줄 알고, 내면의 힘을 깨달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들이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씌워준 굴레를 벗어나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여하튼 옛이야기는 옛이야기 일뿐. 내가 각색하면 그만. 성비는 앞으로 1:1, 성차별적인 컨텐츠는 아무리 재미나도 쓰지 않는다. 


빌 게이츠처럼 돈이 많다면 소비를 최소화하는 구조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 

심플하게 사는 삶이 지구와 미래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값진 일이다. 삶의 질과 품격은 잉여 소유에서 오지 않는다는 걸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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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아이들과 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제 본 영상에서는 생후 한달 된 아이가 폭격맞은 집안에서 구조되고 있었고, 구조대원은 아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보는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이렇게 죽은 애들이 한 둘이 아닌거잖아. 

시리아 내전에는 독재정부와 민주주의 운동, 수니와 시아 종교갈등, 이를 둘러싼 주변국의 이권갈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진리와 정의의 수호의 민낯은 생후  한달 된 아이가 잠든 집에 폭탄을 떨어뜨릴 정도로. 잔인하다. 

하나님의 선하신 팔이 그 아이들을 품어주시길 기도한다. 생명 몇 쯤 죽어나가도 절대 내 기득권, 내 생각만을 지켜야겠다는 욕심사나운 것들은 뒤져버려라. 

강박처럼 며칠에 한번은 누군가와 친분을 확인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실격이라 은연중에 생각하곤 했는데, 소설가 김영하씨의 팟캐스트를 듣고 마음의 짐을 덜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나지만 대략 술마시고 수다떨어서 뭐하냐고,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해서  내면을 키우라고 했던 것 같다. 내향형 인간은 이렇게 면죄부를 받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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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동산처럼 편안한 위로와 더불어 고결한 도전을 주는 이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기본적으로 타인은 내게 별 생각없거나 귀찮아 할거라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인 내가 어찌 너같은 낙천적인 아이를 낳았을까. 어쩌자고 놀이터에 있는 어른 목에 매달려 뽀뽀를 퍼붓느냔 말이다. 

모두 다 나를 사랑해! 이 세상은 정말 좋은 곳이야!


예뻐서 엄마 주려고 갖고 왔어요.
사르르 녹아드는 기쁨

주문한 옷 택배가 왔다. 상준이 왈, "얼마나 예쁜지 보게 한 번 입어봐요."

녀석들 자면 꺼내려했건만, 상준이의 기대어린 눈빛에 꺼내어 입었다. 아랫단으로 갈수록 퍼지는 복숭아색 새틴 스커트. 지켜보던 상경이가 "민어곤주(인어공주) 같아요." 새 옷 입고 설레어서 빙글빙글 도니 흐뭇하게 바라보는 녀석들. 이 닦고 와서보니 엄마가 민어곤주 옷을 벗었다고, 울며 다시 입으라고 하는 경이. 

이렇게 오늘도 공주대접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빠가 엄마를 예뻐해주니 보고 배우는구나. 좋은 남편으로 자라거라. ㅎㅎ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나라며 고집했던 날들이 있었지. 아이들이 자고 난 밤 시간이 이토록 소중한 지 몰랐을 때 말이야.



공동육아 수업을 하다보면 녀석들의 총천연원색의 개성들이 너무나 도드라져서 힘들.. 경이로울 때가 있다. 누구도 개성을 발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가 다들 장난이 아니다. 각각의 향기를 잃게 하는 두려움과 허영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는게, 너를 참된 너로 살게 하는게 육아의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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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정보가 우편으로 배달될 때마다 유심히 보고 이내 우울해진다. 당신도 엄마 품에서 배냇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겠지. 세상이 당신에게 미소짓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낀 적이 있었겠지. 

언제, 왜였을까, 길을 잃은 건.

안드레아 와이스의 책, '파리는 여자였다'를 읽고 있다. 여전히 바람둥이, 술꾼 마초남성들이 주류인 예술계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멋지게 묘사되지만) 연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당시 파리는 '여자는 그저 조신하게 살림하고 애 낳고 예쁘게 꾸미고 남편을 내조해야 한다'라는 당위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었기에 여자 예술가들은 레즈비언이건, 보수 기독교인이건 모여서 연대하고 함께 살아갔다.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기 집을 예술가들에게 열어주었고, 그곳에서 문화가 꽃피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거트루드 스타인


 

그러나 그녀의 다소 전위적은 글들은 출판사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58세가 되어서야 건너간 고국 미국에서 드디어 대박이 터졌다. 그것도 자기가 순수하게 쓴 글이 아닌, 비서이자 동반자 앨리스 토클라스의 평이하게 풀어낸 문체의 자서전에서. 천재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전쟁과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에서 성공했을 땐 파리의 오랜 동료들로부터 비판과 질투어린 배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어쨌거나 찬란했고 행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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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이웃과 함께 부비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특히 오늘 내가 한 말이 잘못한 건 아닐까, 저 사람은 왜 내게 저런 말을 할까 종일 생각하는 내향형 소심인에겐. 그렇지만 40대를 앞두고 더 이상 움츠러들어 살 수는 없다. 함께 살아가며 나와 이웃의 삶이라는 선물을 꽃 피워야 한다. 더 이상 빛에 따라오는 그림자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나를 다독이며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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