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꼭 한 번은 눈물 짓는 너.

어린이집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까지 같이 올라간 학교에서도 낯설어 마음 시려 우는 너는 나를 닮았다. 

울어도 돼. 울다 보면 괜찮아져. 

울었단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터져 버릴 것 같지만, 어느덧 쑤욱 자라 돌아보며 웃을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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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조금 나은 얼굴로 등교했다. 

지난 밤 여혐러가 흩뿌린 어둠이 싸악 가시고 광명이 찾아왔다. 누가 나의 하루에 어두움을 드리울 수 있는가. 이런 승리의 광명앞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끝없이 기도하는 일인가보다. 


라디오에서 아들의 스무살 생일을 축하하는 메세지가 흘러나왔다. '너를 키우며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뭔가 울컥했는데, 공감 보다는 세월의 질감이랄까 무게감이랄까, 아무튼 그런게 밀려와서였다. 


내 버젼은
너를 키우는 매일은 울고 웃고 절망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나날들이었어. 그런데도 너는 그 생명력으로 이렇게나 아름답게 자라주었구나. 고맙고 미안하고 축하해.




"토끼는 경찰보단 당근 농사가 딱이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차단속요원이라니!"


걱정과 잔소리 또한 어찌 사랑의 한 모습이 아니겠냐마는, 근원적으로는 사랑보다 두려움에 더 가깝다.  아이는 끽해야 부모를 안심시키러 거짓말이나 늘어놓겠지. 

신뢰와 격려. 그리고 조용한 기다림으로 너희를 받쳐줄게. 훨훨 날아오르렴.  

하원길, 맞잡은 너의 손이 제법 두툼하다. 내 쬐끄만 손을 넘어서는 영광의 그 날이 날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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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놈은 지난 밤 두 번의 구토와 열댓번의 설사를 했다. 종일 뭣만 먹으면 토해대더니, 저녁엔 할머니가 끓여준 쌀 죽을 먹고 토하지 않았다. 옆에서 구운 계란을 우적우적 먹어대는 형아를 원망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며 내내 징징 운 것 빼고는 꽤나 큰 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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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 녀석의 목숨을 부지시켰다. 이 얼마나 영광된 날인가! 나여. 잘하였도다. 토닥토닥

김영하씨 책을 읽다가 생각. '내면이 있는 아이'로 키우면 되겠구나. 종이 한장,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외로움과 친구 먹는 아이로.

그렇지만 현실은, 오늘도 근근히 목숨 붙여놓은거. 그래도 잘했어, 배우리. 목숨 붙여놓은게 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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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면이 있는 사람과는 짧은 시간을 보내도 동기부여+힐링이 있었다. 부족한 인간관계를 억지로 돈독히 한답시고 앞에 사람 앉혀놓고 본격적으로 통화를 하고 종일 소모적으로 카톡하는 사람이랑 굳이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다. 어린시절의 의리랍시고 애써 일방적으로 지켜왔던 관계도 보내주자.

물을 쏟고 눈치를 보는 아이를 보며 가슴아픔과 동시에 쏟아져나오는 모진 말, "엄마가 의자에 앉아서 다 먹고 일어나라했지!"

울어서 한번 더 혼난 아이의 '미안해요' 소리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엄마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데, 나로서는 절망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먹여 살리는거나 근근히 하고 있다. 잘 살려놓으면 언젠가 좋은 아빠의 기운을 받아, 네 안의 좋은 에너지로 날아오르겠지. 애들한테 짜증이나 안부리게 일찍 자야겠다. 



상준아, 하늘 색 정말 예쁘지. 엄마는 저런 하늘 정말 좋아해.
- 나는 예쁜 거 안좋아해요. 멋있는 거 좋아해요.
예쁜 것도 좋고, 멋진 것도 좋지 않아? ...근데 상준이 엄마 좋아하잖아. (뻔뻔)
- (잠시 침묵) 엄마 안예뻐요.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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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넘치는 장남은 불현듯 끌어안고 '난 엄마가 정말 좋아' 할 때가 많다. 그럼 길 복판에서 한동안 서로 부둥켜 안고 있다. 아들 키우는 재미 = 연애하는 기분





초등학생 오빠를 둔 아이와 친구가 된 상준이는 요즘 '짱', '대박' 이라는 말을 쓴다.

닭다리살에 소금뿌려 구워주었더니 먹는 도중 "엄마, 짱 맛있어요."를 한 다섯번 했다. 히힉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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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사람이 정말 별로인데, 그 사람도 나를 정말 별로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또 마음에 걸리는 건 뭐다? 이제 나잇살 좀 먹었으니 자잘한 바람에 흔들리지 좀 말고.

고집과 게으름을 '나만의 스타일'로 포장해서 사는 것도 애가 없을 때 얘기다.

내 작은 말과 행동이 쌓여 아이의 내면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온갖 회한과 원망 속에 빠져 사는 자신을 먼저 구해야겠구나.

진심으로 준이랑 경이가 염치를 알고 제 몫을 하는, 바르고 밝은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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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랑 경이가 많이 아팠다. 사실 아직도 아프다. 전엔 애들 다들 하는 병치레 가지고 엄마들 참 법석 떤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 살 수가 없지 않은가. 아이는 이미 내 안에 우주처럼 넓고 깊다.

구호니, 환경보호니, 인권이니 모든 이슈들이 여기서 시작한다. 아이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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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이렇게 병치레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바닷속에 생매장된 아이들의 그 많은 부모들은 오늘도 어찌살아가고 계실까.

병신같은 인간들이 '리본충' 운운하며 우리 차량을 행여 해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해도

예은이 아빠, 유민이 아빠가 그 먹먹한 마음으로 지나가다가 우리 차 뒤에 붙은 노란 리본을 보고 혼자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


'나 죽을때까지~~' 하는 가사를 듣고, 왜 저 삼촌이 죽는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응, 시간이 많이 지나서 할아버지가 되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이야기야."
"엄마도 그럼 죽어?"
"그렇긴 한데 지금은 아니야. 아주 시간이 많이 흘러서 할머니 되면 죽어."
"그럼 우리 할머니도 죽어?" 하면서 울먹인다. 악. 어쩌지 어쩌지

"응 그래도 우린 죽어서 다 하늘나라에서 만날거야"..라고 해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녀석.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난감한 질문들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음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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