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한파라는 날에도 스웨터 한장 입고 뛰쳐나가던 아이에게, '건강'이란 건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의 고루한 설교주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것 없는 타고난 조건이 아니었던가. 하루 세 끼 라면을 먹어도 날씬한 몸에 활력이 넘치고 전날 무리해도 한 잠 자기만 하면 괜찮아지는 그런 시절... 은 가버렸다. 완전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싸늘한 연인처럼 나의 오만을 비웃으며 떠나버렸다. 아. 불혹을 앞두고 청춘의 무지함을 회개합니다.   

먼 곳이 뿌옇게 안보이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쉬이 피곤해져서 덜컥 걱정이 들었다. 라섹 수술 이후 지속적인 시력 저하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이러다 안보이게 되는 거 아닌가. 다시 빙글빙글 안경인건가. 병원에 갔더니 '근시가 재발했고, 안구 건조증이 심할 뿐, 눈은 건강합니다.' 

사실 걱정의 주된 요인은 시력 저하였는데, 의사선생님이 '그냥 근시가 재발한거에요' 라고 편안하게 말씀하시니 어쩐지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그래. 빙글빙글 안경이 대수냐. 눈이 건강하다는데. 흐히힉 하며 안경 처방전을 받아 집으로 랄랄라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시력이 좋아지는 법'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먼곳을 보다 가까운 곳을 보세요. 눈 스트레칭을 하세요. 그래 그걸 해보자. 

산 속에 푹 감싸 안겨진 우리 동네. 나서 자라며 매일 보던 인수봉, 그 옆의 백운대, 그보다 야트막하고 가까운 동산의 낮은 곡선을 바라보다가, 손의 도드라진 뼈와, 모공, 수북한 잔털들, 푸르스름한 핏줄,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손금을 찬찬히 본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매일 마주하지만 당연하지는 않다. 

그간 비루하고 치졸한 정신을 지탱해주고 감싸 안아준 내 몸에게 사과를 건낸다. 아로나민 골드와 루테인을 곁들여. 

있을 때 잘 하라 이거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