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준이가 잠든 후 저녁 설겆이를 한다. 

결혼전엔 집안일엔 손하나 까딱 안했다. 지가 입던 옷도 허물벗듯 척척 벗어 치우지도 않던 나였거늘. 엄마의 잔소리는 잔소리였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매끼에 먹은 설겆이를 재깍 재깍 한다. 그 뿐인가, 틈만 나면 청소기를 돌리다니! 게으름의 여왕. 내가!!

신기한 건 반복되는 일상인데 지루하지 않다. 아까 상준이가 어떤 반찬을 좋아하며 잘 먹었는지 생각하며 웃고, 물컵을 깨끗이 씻으며 내일 물을 찾을 아이를 상상한다. 그리고 이내 사랑으로 가득찬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몸은 무거운데 마음은 가볍다.

아이를 키운다는게 이런건가 싶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낳고 키워야 된다는 건 너무 억지스럽다만, 적어도 내겐 인생에 없어선 안될 최고의 경험이다. 매일 설겆이하며, 청소기 돌리며, 아기와 산책하며, 재우며  나의 죄를 고하고, 도우심을 구하고, 더 좋은 방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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