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밥통의 찜기능을 이용해서 카스테라를 만들었다.
파는 것보다 당도나 질감면에서 한참 떨어졌지만, 갓 쪄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스테라를 대령하니 남편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릴 때 엄마가 희한한 구이판을 사오신 후 몇 차례 카스테라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달콤한 맛과 향, 찍혀나오던 격자 무늬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군것질 할 여유가 없었던 우리에겐 황금빛의 환상적인, 꿈결같은 맛이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엄마가 달걀 흰 자를 분리한 후 손으로 설탕과 마구 쳐대서 카스테라의 바디를 결정하는 머랭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묽었던 흰자가 샴푸거품처럼 잔뜩 부풀어 오르는 장면은 정말 달콤한 마술 같았다.

나도 엄마처럼 머랭을 만들어본다. 결혼선물로 받았던 핸드블랜더가 지잉 소리를 내며 거품을 만들어준다. 근데 엄청 오래 걸리는거라. 그걸 세워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들더라.

문득 엄마가 손으로 치대어 거품을 일으키는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쥐가 나오는 쪽방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막막했던 서른 살의 엄마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엄마 손에서 황금빛 기쁨이 만들어졌구나. 그래서 내 뇌리 한 구석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있는거구나.

머랭 만들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나보다.
어느 추운 겨울날에도 생각이 문득 나서 살아갈 힘이 되는 아름다운 기억, 우리 아들에게도 많이 만들어줘야지.


따뜻한 카스테라는 우유와 함께. 두번째 만들었을 땐 균일한 갈색 만들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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