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너무 이상할 때가 많다.
1초만에 세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분열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조울의 증상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도,
그러면서 버젓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연기하는 것도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듬직한 이재우가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하면
마술처럼 스르르 괜찮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편히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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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티비를 트니 뭔가 음산하고 무언가 튀어나올 듯한 오프닝이 나오고 있었다.
잠시후 역시나 19금 마크가 오른쪽 상단에 떠억 떠올랐다.


분명 29세나 먹었는데 아직도 19금 영화는 보기가 상당히 거북스럽다.


사람이 칼에 찔려 피를 내 뿜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
반쯤 썩어가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장면,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할 타인의 성행위 장면,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살면서 단한번도 실제로 보기 힘들거나 봐서는 안되는, 우리의 정신에 데미지를 가하는 용량 초과의 이미지들을 자꾸 머리속에 넣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략 그런 이미지들은 119금 정도의 등급을 매겨야 하는게 아닌가.

출근하고 메신져에 로긴하니, 상당한 명예를 누리고 벌이도 꽤나 괜찮으나 과도한 업무와 야근과 회식에 시달리고 있는 KBS 췌쉐진 기자가 말을 걸었다.


나랑 놀아주러 왔구나
칼퇴칼출근 투잡스 부르주아급 프롤레타리아야


듣고 보니
나 꽤 감사해야 할 상황인가 ㅋㅋ


점심시간에 직원분들과 잠시 트랜스지방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근데 생각 외의 식품들에도 트랜스 지방이 들어있다네?! 확실히 해두기 위해 지식인 검색을 했다.


'오옷. 이런 덴져러스한 녀석들같으니... 팝콘, 감자튀김, 케익, 크로와상, 과자....'


최고로 위험한 이 리스트를 읽고 있는데 문득 배가 고파지고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며칠전 물품을 주문하며 내가 좋아하는 쌀 새우깡을 시킨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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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져러쓰 한 놈



결국 강력한 유혹을 참지 못하고
기사를 읽으며 20분만에 한 봉지를 다 비워버렸다. (털썩)

정말 마지막이다. 굿바이 과자, 굿바이 트랜스 지방산를 속으로 되뇌이는데
물품 박스안의 쌀 새우깡 다섯봉지들이 낄낄 대며 비웃었다

어릴 적 농부가 밭에 씨뿌리는 비유를 들을 때면 항상 나는 '돌밭'과 '가시나무밭'이 아닌 '좋은 밭'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돌밭과 가시나무밭에도 싹은 어쨌거나 피어난다는 것. 정작 그 밭이 무슨 밭인지는 시간이 좀 지나야 드러난다. 오늘 스물아홉짜리 머리 굵은 내게 예수님은 다시 한번 친절히 일러주신다.

돌밭- 문제와 박해 (인간관계, 특히 '쿨'하지 못한 크리스챤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갈등)
가시나무밭- 세상적인 걱정 (돈, 직업, 주택)

나는 어느새 소중한 나의 새싹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가까스로 뿌리를 내렸는데 가시를 드리워 내 안에 선한 것이 맘껏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대충 세상에서 쿨하고 덕 많은 사람, 어느 정도 부유함을 누리며 명성도 갖게 되었는데
결국 천국 문앞에서 창피 당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분명 주변에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그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던진 사람들이다.

나에겐 다시 헌신이 필요하다.
죽도록 열매 맺고 싶다. 다른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람.


우쿨렐레로 뚱가뚱가 찬양을 하다가 간만에 일인 부흥회를 열었다.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며 괴롭히던 우울이란 녀석은 기도하는 그 순간 다 사라졌다.
나는 하나님과의 대화채널이 있다.

이 김에 지난 주 설교 말씀 듣고 벼르던 기도노트를 만들었다.
'바를 정'자 그려가며 열번씩, 백번씩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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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 박사님이 고향에 다녀오시는 사이 박사님 방 화초에 물을 주었다.
센스만점 박사님은 베레모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귀환하시어 손이 으스러지게 악수를 청하셨다. 그리고 고맙다고 저렇게 예쁜 화분을 선물해주셨다.


하도 기분이 좋아 박사님께 감사 메일을 드렸다.
"박사님은 언제나 저에게 상쾌한 스위스 바람을 가져다 주시는군요!" (선물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이 귀여운 산타 할아버지는 답장을 보내왔다.
"As you may know Switzerland is always ready for fresh wind"


엄마랑 티비보며 누워서 졸고 있는데 땅이, 집 건물이, 걸어놓은 점퍼의 지퍼 끝이 흔들흔들 흔들렸다. 우리는 깜짝놀라서 부산을 떨기 시작했고, 난 일어나서 기사를 검색하였다. 잠시후 아빠가 내가 부탁한 오렌지를 사서 들어오셨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친구같은 아빠라고 자랑할 때도 있었지만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아빠로부터 하나님을 배운 것 같다.


어제의 근심거리가
오늘의 감사의 제목이 된다.

우리 하나님이 나를 이토록 인도하시는 것은
분명 그 높으신 뜻으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한동대 총장님이 미국에 갖고 가셔서 모금을 위해 상영할 홍보 동영상에, 별 생각없이 기꺼이 출연하겠노라고 했다.

저에겐 이런이런 꿈이 있습니다, 한동대에서 이런이런 영향을 받았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용도에 맞게' 좀 거창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아직 그 동영상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아마 능력있는 친구들이 더욱 거창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잘 편집했을 것이다.

이후에 알고보니 지금 하버드 캐네디 스쿨에서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이름 날리고 계시며 신문에도 크게 발표된 최유강씨(전 한동대 학생회장)도 그 클립에 들어있다고 했다. 어휴, 그런 대단한 분과 같이 출연하다니. 뭐 그래도 상관없지, 저 멀리 미국에서 총장님이 한동대 기금마련을 위해 사용하신다면야.

그러나 왠걸,
"이화야, 횃불회관에서 학교 홍보 설명회할 때 니 동영상 봤다."
"어제 동문회에서 틀어준 동영상에 너 나오더라"
그 동영상이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

나의 4년간 생활(공부안하고, 가끔 수업 땡땡이도 치고, 발표 준비 안해서 교수님한테 크게 혼나서 울기도 했던 그 암울했던...)을 다 본 친구들이 그 동영상을 봤을 거라 생각하니
쥐구멍에 숨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게다가 더 부끄러운 것은 어느 날, 나와 비슷한 꿈을 가졌는데 훨씬 똑똑하고, 상황도 좋은데다가 훨씬 성실하기까지한 그 사람을 보며, 또한 나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보며 살짝 토라져 내 꿈을 접기로 마음 먹었던 것.

오랜만에 만난 양해란 목사님은 그런 나에게 따뜻한 일침을 놓으셨다.
"아직도 그렇게 어리고 가능성도 많은데다가, 여러 달란트를 받은 니가 지금 땅을 파서 그 달란트를 묻어놓겠다고? 나는 한 달란트만 있어도 두 달란트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 이렇게 바쁜데. 넓은 지평을 바라봐야지."
50대에 들어서시면서 박사논문을 쓰고 계신 목사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참으로 별 생각 없이, 아무런 가책도 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노력은 해보지도 않고서. 그리고 버릴 꿈들을 잘 포장해서 땅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대의 마지막 1년,
나는 다시 꿈을 꾸기로 다짐한다.
가능성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눈감는 그 날 까지 이상을 쫓기로.
길을 인도하시는 분도, 타이밍을 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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