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추위에 우울의 늪에서 질식하기 직전 여름나라로 휴가를 다녀왔다. 하루 세끼 메뉴 고민도 필요없는 곳에서 아침 먹고 수영, 점심 먹고 수영, 심지어 저녁 먹고 수영 했다. 여행이 이렇게 안식인 적이 얼마 만인가. 아들 둘도 이젠 자기들끼리 상황극으로 누구 하나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꽤나 긴 시간을 보낸다.  체크인 하는 안락한 소파에 녀석들이 쿠션으로 기차놀이를 하는 동안 웃음을 가득 띤 호텔직원이 머리에 조심스레 꽃을 꽂아주었다. 순간 배경음악이 흐르며 새로운 문이 열리며 한바퀴 휭 돌아 변신하는 기분.. 그간 애 키우며 춥고 지루한 하루 하루를 버티느라 고생했어, 스스로를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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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새 학기를 시작했다. 칼바람이 부는데 예전처럼고통스럽지 않다. 충전했으니 또 달리거나, 버티거나 해야겠다. 우선 집 정리와 중고물품 처분.

지난 밤, 철 지난 영드 한 편 보고 너무 슬펐는지 꿈에서도 슬픈 노래가 흘러 잠을 설쳤다. 애들 등원시키고 녹음 한 걸 로직으로 찍어 반복 걸어놓고 들으니 더 슬퍼졌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할 수가 없는데다 용기도 점점 사라진다. 그럴 땐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이렇게 기다리다 끝나는 걸까.

사진 한 장에 프랑스 자수에 꽂혔는데, 그래서 동네 공방 연락까지 다 해 놨는데, 찬 바람 맞고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사람이랑 안면 트고 인사하기가 무섭다. 전화벨이 울리면 무섭다. 전화를 해야 하는 것도 무섭다. 따뜻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국회의원도 아니면서 탄핵 가결에 온 맘을 쏟아서일까, 매사가 귀찮고 허탈하고. 헌재 판결까지 남았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인생 자체가 기다림인데도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애들 늦잠 때문에 튼 티비에서 바이블 퀴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촌스러운 미국애들이 뻔한 신앙을 가지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거는구나'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몇 분만에 그런 생각이 뒤집혔다. 몰입하고 정성을 다하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숭고한지, 보고 나서 그간 나를 괴롭히던 허탈감이 깨끗이 씻겨나갔다. 머리를 올려묶고 빨래를 돌렸다. 아이들 아침 세팅을 끝내고 라디오를 틀어 깨웠다.

어린 날 그렇게 열심히 무엇을 한 적이 있었나. 4부 합창곡을 쓰고 대상을 수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 더 재밌었던 순간은 같이 화성을 몇달간 연습하고 옷을 맞추고 안무를 짜고.  힘을 합쳐서 같이 열매를 거두는 경험이 얼마나 갚진지. 준이와 경이에게 꼭 그런 경험들이 있으면 좋겠다. 비틀즈처럼 블랙아이드피스처럼 이름을 날리진 못한대도 동네친구들이랑 재미난 프로젝트를 미친듯이 몰입해서 해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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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친구들이랑 매일 산에 나가는 상준. 친구 몇명과 탐험대를 결성하여 화석을 찾겠다고 하던 게 떠오른다. 히히 우리 아들 딸들. 수업 준비나 해야겠다. 



극단 진동과 지난 여름 작업한 음악극 '반달 할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특별한 여행'의 음원 '반달 여행'이 나왔습니다!!!!
반달로 유명한 동요작곡가 윤극영의 노래들을 우리 장단에 맞춰 편곡한 곡들과 연극배경음악으로 작곡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윤극영 선생님은 강점기에 우리 아이들이 우리 말로 노래부르길 염원하며 곡을 쓰셨다고 하죠. 애들한테 오늘도 뭘 들려줘야 하나, 고민하시는 부모들이여, 어서 들어보세요! 
1월 부터는 대학로에서 공연합니다. 정말 재밌으니 꼭 보러오세요!

+ 예술적 동지 최소진 대표 + 남편이자 커버 디자이너 이재우에 무한 감사.

음원사이트에서 '반달 여행' 검색하시거나

카카오뮤직
http://kko.to/CVxre7zqw

올레뮤직
http://www.ollehmusic.com/…

지니뮤직
http://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0889201

엠넷
http://www.mnet.com/album/1377974

네이버뮤직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418007

소리바다
http://www.soribada.com/music/album/KC0036805

멜론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012306

벅스뮤직
http://music.bugs.co.kr/album/20064276


아들 둘 엄마지만 공동육아터의 딸들에게 언제나 마음이 쓰인다. 요즘 아이들의 주 관심사 중 하나는 성역할. 

옛이야기와 접목한 음악감상 수업 중, 용감한 다섯 아이의 모험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래미 하나가 묻는다. 다 남자에요? 

아뿔싸. 그렇구나. 

옛이야기 중 주로 모험을 떠나는 애들은 다 남자다. 딸들은 주로 딸이라서 버림받거나, 구조받아야 하거나, 강제 결혼을 한다. 이 뭐, 개같은 경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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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가 장난치고, 에디가 발명할 동안, 분홍 드레스를 입은 루피는 쿠키를 굽는다. 로보트 일색의 만화도 마찬가지다. 남녀의 성비는 거의 5:1. "남자는 힘이지" 류의 대사도 종종 들린다. 아이들에게 만화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다. 화면은 화려하고 예쁜데 젠더에 대한 고려가 없다.  그나마 가끔 보여주는 채널이 외국채널인데, 성비와 폭력성 면에서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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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들이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음 좋겠다. 용감하게 도전할 줄 알고, 내면의 힘을 깨달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들이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씌워준 굴레를 벗어나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여하튼 옛이야기는 옛이야기 일뿐. 내가 각색하면 그만. 성비는 앞으로 1:1, 성차별적인 컨텐츠는 아무리 재미나도 쓰지 않는다. 


빌 게이츠처럼 돈이 많다면 소비를 최소화하는 구조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 

심플하게 사는 삶이 지구와 미래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값진 일이다. 삶의 질과 품격은 잉여 소유에서 오지 않는다는 걸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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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아이들과 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제 본 영상에서는 생후 한달 된 아이가 폭격맞은 집안에서 구조되고 있었고, 구조대원은 아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보는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이렇게 죽은 애들이 한 둘이 아닌거잖아. 

시리아 내전에는 독재정부와 민주주의 운동, 수니와 시아 종교갈등, 이를 둘러싼 주변국의 이권갈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진리와 정의의 수호의 민낯은 생후  한달 된 아이가 잠든 집에 폭탄을 떨어뜨릴 정도로. 잔인하다. 

하나님의 선하신 팔이 그 아이들을 품어주시길 기도한다. 생명 몇 쯤 죽어나가도 절대 내 기득권, 내 생각만을 지켜야겠다는 욕심사나운 것들은 뒤져버려라. 

강박처럼 며칠에 한번은 누군가와 친분을 확인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실격이라 은연중에 생각하곤 했는데, 소설가 김영하씨의 팟캐스트를 듣고 마음의 짐을 덜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나지만 대략 술마시고 수다떨어서 뭐하냐고,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해서  내면을 키우라고 했던 것 같다. 내향형 인간은 이렇게 면죄부를 받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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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동산처럼 편안한 위로와 더불어 고결한 도전을 주는 이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기본적으로 타인은 내게 별 생각없거나 귀찮아 할거라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인 내가 어찌 너같은 낙천적인 아이를 낳았을까. 어쩌자고 놀이터에 있는 어른 목에 매달려 뽀뽀를 퍼붓느냔 말이다. 

모두 다 나를 사랑해! 이 세상은 정말 좋은 곳이야!



Ni l’un, ni l’un ni l’autre. Il fera ce qu’il veut mon gamin.
C’est pas à la sainte famille d’avoir à décider sur quel air il va danser.
Ni l’un, ni l’un ni l’autre. Il fera ce qu’il veut mon bonhomme.
C’est pas à la société d’avoir à m’expliquer comment j’vais en faire un homme.

Un peu d’amour, un peu de miel,
Un peu de soleil pour ses arcs-en-ciel.
Un peu de sable pour ses châteaux,
Pour ses desseins des crayons tant qu’il faut.
C’est tout ce qu’il faut, c’est tout ce qu’il faut.

그 누구의 말도 아닐거에요 

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거에요

가족이 이 아이에게 어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라고 결정할 수 없어요

그 누구의 말도 아니에요 

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거에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사회가 내게 말해주지 않아요

사랑 조금 꿀 한 스푼

무지개를 띄울 햇빛 조금

성을 쌓을 모래 조금 그림을 그릴 색연필 조금

그거면 돼요 그거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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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엄마가 요람에 누워있는 주인공에게 불러 주는 노래. 

의도치 않았는데 기막힌 타이밍에 상준 낮잠 후 출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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