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타고 사각사각, 스르륵, 틱틱, 쩝쩝 소리가  귀에 흘러 들어오면 화면 너머의 누군가와 닿은 기분이 들었다. 컨셉들은 먹방, 촉감 놀이(모래, 비닐 등), 서비스 제공(면도, 귀파주기, 헤어샵, 책 읽어주기 등), 롤플레이(연인, 영화캐릭터, 주술사, 간호사 등 각종 직업인들)로 아주 다양하다.  댓글엔 사람들이 무슨 느낌이었는지, 어느 시점이 제일 좋은지 서로 공감하며 팬심을 불태우는 대잔치가 일어나는데, 이런 대화합의 장이 또 없다. 한 잘생긴 라틴계 남자의 채널에는 꽤나 수위 높은 섹시 컨셉 ASMR이 많았는데, 남녀 할 것 없이 그 곳에 드러누운 이들이 많았다. '나 남자인데, 게이가 된 기분이야.' 

결국 본질은 만지고, 속삭여주는 스킨십이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지만 나이 들수록 부인되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와 닿고 싶은 욕망은 재빨리 미성숙함이나 잘못으로 치부되어 지적을 받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ASMR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어폰을 타고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서 따뜻함과 안식을 찾는 일은 분명 무해하지만, 어쩐지 슬프다. 곁에 있는 이를 안아주는 일, 부드럽게 눈을 맞추는 일이 어렵지 않다면 헬살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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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막 낳았을 때였다. 나보다 다섯달 먼저 출산한 그는 산후조리를 마치고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었다.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나의 마음의 벽이 얇아지는 순간이었다. 저 사람이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아직 나누지 못한 얘기들이 많았는데. 참 고마웠다고 전하지도 못했는데.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지만 그의 기억은 그 따뜻한 포옹으로 남아있다. 

말 주변은 없지만 두 팔이 있다. 관절이 움직여 무언가를 감싸줄 수 있는. 오직 밥숟갈을 뜬다거나 자판을 두들리는 용도였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도 괜찮았을거다. 아껴서 뭐하겠나. 



 

 

뽕없는, 편안한 속옷을 찾아 헤메다 발견, 최근 꽂혀 직구 하기 마지 않았던 브랜드는 바로 AErie. 브랜드 파워 같은 거에 별로 영향 받지 않는다 자부하던 나를 함락시켜 버렸다. 뱃살이 접히고, 얼굴에 주근깨를 커버하지 않은, 가슴 뽕을 넣지 않은, 허리를 과도하게 뒤로 꺾지 않은, 잇몸 만개한 미소의 모델들이 꾸밈 없는 모습으로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진 보는 재미에 매일 들어가 봄. 조만간 제모도 하지 않은 모델들을 보고 싶다.. 면 너무 큰 바람인가

 

 

 + 새해 첫 날 들어갔을 땐 사이트가 막혀있다. 페이지에 '컴터 끄고 가족과 보내세요' 라는 메세지와 함께. 그저 좋아하던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기준 최고의 사진,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 아이샤. 세일 때 저 노와이어브라 색깔 별로 다 삼. 매우 빨리 품절됨

 

그러고 나서 미국의 몇몇 의류 브랜드들을 보니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뼈만 남았는데 가슴과 엉덩이는 크고 팔다리는 포샵으로 늘린 모델들만 쓰는 건 아닌 듯. 우리 나라에 66100이란 잡지를 창간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댓글러들에게 테러 당한 걸 생각하면 헬살이가 더욱 실감난다. 이런 것 좀 들어왔으면.

 

돈을 벌면서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다니... 이런 천하에 부러운 것들.  나도 에어리에 입사하고 싶다으아아! 지들끼리 얼마나 행복하고 재미나겠나

 


길고 긴 추위에 우울의 늪에서 질식하기 직전 여름나라로 휴가를 다녀왔다. 하루 세끼 메뉴 고민도 필요없는 곳에서 아침 먹고 수영, 점심 먹고 수영, 심지어 저녁 먹고 수영 했다. 여행이 이렇게 안식인 적이 얼마 만인가. 아들 둘도 이젠 자기들끼리 상황극으로 누구 하나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꽤나 긴 시간을 보낸다.  체크인 하는 안락한 소파에 녀석들이 쿠션으로 기차놀이를 하는 동안 웃음을 가득 띤 호텔직원이 머리에 조심스레 꽃을 꽂아주었다. 순간 배경음악이 흐르며 새로운 문이 열리며 한바퀴 휭 돌아 변신하는 기분.. 그간 애 키우며 춥고 지루한 하루 하루를 버티느라 고생했어, 스스로를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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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새 학기를 시작했다. 칼바람이 부는데 예전처럼고통스럽지 않다. 충전했으니 또 달리거나, 버티거나 해야겠다. 우선 집 정리와 중고물품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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